1.
움베르토 에코나 버트란드 러셀과 같은 위대한 천재들의 특징 중 하나는,
짧고 간결한 몇 개의 문장 안에 정말 깊은 통찰력이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러셀은 <나는 이렇게 믿는다>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과학을 인간 생활에 활용하는 데 있어
나로서는 다소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동의할 수 없는 태도가 하나 있다.
"자연적이지 않은 것"을 끔직하게도 싫어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
우선, 무엇이 "자연적"인가?
거칠게 말하자면, 본인이 유년기에 친숙했던 것이다.
노자는 도로며 마차며 배까지도 반대했는데
아마도 그가 태어난 지방에선 이런 것들이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루소는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자연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가 철도가 등장할 때까지 살았더라면 벼락같이 비난했을 게 뻔하다.>
러셀이 타계한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도를 넘는 환경주의나 자연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과 극단적인 사상에,
"자연주의자가 말하는 자연이란 결국 본인들이 어렸을 때 친숙했던 것"이라는 말보다
더 통렬한 답이 될 수 있는 게 있을까 싶다.
2.
또한 러셀이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쓴,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한 것"이라는 말은,
내가 살면서 마음의 안정을 받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문구를 보게 된 후로는,
뭔가 후회되는 일을 저지른 뒤에, 또는 예전에 있었던 안 좋았던 일을 떠올리면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라고 후회하면서 끙끙 앓는 짓을 대부분 줄일 수 있었다.
그 대신에, 그 때 이렇게 했다면 지금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가정 섞인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정말 수도 없이 많은데,
그 중 하나는 <왜 20대에 바그너 오페라 대본을 외우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내가 바그너 오페라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던 대학교 3학년 (또는 5학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기억력과 암기력이 좋았었다.
그 때 듣기 시작했던 <니벨룽겐의 반지>나 <파르지팔>과 같은 오페라 대본을 외웠다면,
지금 훨씬 더 바그너를 깊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3.
같은 직장에 근무했던 어느 한 분은,
단어장을 만들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복도를 걷는 짜투리 시간에 외국어 공부를 하곤 했다.
이 분에 자극받아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 생각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어느 순간 아깝게 느껴져서,
나도 몇 년 전부터 이런 시간에 틈틈히 뭔가를 하기로 했다.
바로 바그너 오페라의 대본을 외우는 것.
그렇게 4,5년 시간이 지나다보니,
<신들의 황혼> 3막, <발퀴레> 1막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어느 정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4.
발퀴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지클린데는 바그너가 창조한 모든 인물들 뿐만 아니라,
모든 오페라, 어쩌면 모든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낯선 기분이었고 가까운 자들도 그녀를 싫어"해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이" 자란 후에,
산적 두목인 훈딩과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 하루하루 깊은 슬픔 속에 살다가,
우연히 그녀의 집에 온 지그문트를 만나 그와 함께 달아나지만,
지그문트는 그녀가 보는 눈 앞에서 훈딩에게 살해 당하고,
겨우 다시 도망쳐 혼자서 힘겹게 아이를 출산하고 곧바로 죽게 되는
그녀의 삶은 지그문트를 만난 단 하루 외에는 모두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아들, 지그프리트 역시 위대한 영웅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결국 하겐과 알베리히에 의해 비극적으로 죽게 되지 않는가.
내가 <발퀴레>를 그토록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지클린데 때문일 것이다.
5.
얍 판 츠베덴이 서울시향을 지휘하고,
스튜어트 스켈텐, 앨리슨 오크스, 팔크 슈트룩만이 출연한
스탠딩 오페라 형식의 바그너 발퀴레 1막 공연을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보았다.
배가 너무 나와서 공연 도중 급사하면 어떻게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무게감 있는 발성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스켈텐의 지그문트,
목소리가 약간 사악해서 "일 트로바토레"의 마녀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지만
도리어 이에 의해 배역이 가진 처절한 슬픔을 잘 표현한 오크스의 지클린데,
존재만으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슈트룩만의 훈딩은 모두 정말 즐거웠다.
금관이 약간 불안정했고 결국 트럼펫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지만,
서울 시향 역시 전반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6.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 녹음은 카라얀이 가장 야심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지만,
아쉽게도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녹음에 포함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 이유는 이 음반이, 어느 지휘자가 말했던 대로,
"실내악"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스케일의 음악을 들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카라얀이 이 음반을 녹음한 것이 큰 음량을 내기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으나,
결국 이 장소 (베를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선택한 것도 카라얀이었으니
그러한 부분 역시 의도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렇게 작고 섬세한 음량의 녹음이 도리어 <발퀴레 1막>에서는 가장 빛나며,
처절한 패배주의적 슬픔의 소유자인 지클린데 역에
더없이 청아한 맑은 목소리의 소유자인 군둘라 야노비츠를 캐스팅 한 점에는
카라얀과 같이 우뚝 솟은 천재의 안목은 평범한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또다시 깨닫게 한다.
야노비츠가 부른 지클린데는,
오페라 속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사실은 결코 바뀔 것 같지 않다.
내가 대외적으로 주로 쓰는 email 중 하나는 그녀의 이름, 지클린데 (sieglinde)에서 따온 것이다.
다만 email을 만들 때 실수로 철자 중 하나를 틀렸는데,
그것이 도리어 나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
지클린데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은 내게 너무 주제 넘는다고 생각했고,
프로이트가 말한 "모든 실수는 무의식에서 나온다"는 것의 좋은 예가 아닐까 싶어서였다.
누군가가 이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긴 호흡을 들여서라도 sieglinde에 대한 내 애정과 왜 틀린 철자를 고치치 않는지 말해 주고 싶다.
7.
작년에 베네치아에 갔을 때가 9월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더웠는데,
이 아름다운 도시를 다녀온 후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 죽음>을 다시 읽으니
이 위대한 작가가 베니스의 더위를 얼마나 잘 묘사했는지 그 경이로운 필력이 새삼 감탄스러웠다.
베네치아는 바그너가 숨을 거둔 <벤드라민 칼레르지 궁전>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카지노로 되어 있어서 아마도 카지노 고객이 아닌 이상 들어가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갔을 때에는 그나마, 아예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바그너가 마지막 순간을 보낸 이 곳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들어가지 못 한 것은 아쉽기만 했다.
다만 궁전 (또는 카지노)의 아주 낡은 뒷 담에서 이러한 문구가 적힌 것을 볼 수 있었다.
<Riccardo Wagner, Morto Fra Queste Mura>
번역을 돌려보니 <리하르트 바그너, 이 벽 안에서 사망하다> 이라는 뜻인 것 같다.
2024.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