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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Walküre

1. 움베르토 에코나 버트란드 러셀과 같은 위대한 천재들의 특징 중 하나는, 짧고 간결한 몇 개의 문장 안에 정말 깊은 통찰력이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러셀은 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러셀이 타계한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도를 넘는 환경주의나 자연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과 극단적인 사상에, "자연주의자가 말하는 자연이란 결국 본인들이 어렸을 때 친숙했던 것"이라는 말보다 더 통렬한 답이 될 수 있는 게 있을까 싶다. 2. 또한 러셀이 이라는 책에서 쓴,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한 것"이라는 말은, 내가 살면서 마음의 안정을 받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문구를 보게 된 후로는, 뭔가 후회..

카테고리 없음 2024.02.13

Oppenheimer

1. 요새 영화값이 많이 올랐다고 들었는데, 확인해보니 14,000원이다. 생각보다는 그렇게 비싸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 예전에는 얼마를 내고 보았을까? 가격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극장에 간 게 오랜만이었다. 살면서 보았던 여러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 , , , , 등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 에 대해,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존경심이 들게 하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 작품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히 핵심을 짚는 평가는 없지 않을까 싶다. 청나라의 몰락-중일전쟁-국공내전-대약진운동 그리고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오직 비극으로 점철된 중국의 근현대사도, 이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정당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연기, 대사,..

카테고리 없음 2023.08.27

K 교수님

1. 성함을 직접 적는 것이 조심스러워 성함 대신 K 교수님이라고 적게 된 분을 처음 뵀던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2006년이나 2007년 경, 어느 심포지엄 또는 강좌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분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업적으로 태양과도 같이 길을 밝혀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하셔서, 후배들의 초라한 성과와 별 것도 아닌 성취마저 늘 진심으로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길을 가는 후배들을 항상 진정으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셨다. 2.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K 교수님께 연락 드려서 식사 한번 사주시라고, 술 한번 사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 분과 같이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

카테고리 없음 2023.08.20

Starless

1. 2,3일에 불과한 짧은 휴가 기간에 묵혀 두었던 몇 가지를 했다. 그 중 하나는, 사 놓고 못 보았던 블루 레이들을 보는 것. 존 윌리암스가 본인이 작곡한 음악을 빈 필과 베를린 필을 지휘해 만든 블루레이 2개, 탑 건 매버릭, 킹 크림슨의 50주년 다큐멘터리와 starless 마지막 연주가 담긴 블루레이, 이렇게 4개를 하루 내내 집중해서 보았다. 2. 빈 필과 베를린 필 중 어느 오케스트라가 더 위대한지에 대한 질문보다 바보같은 질문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 같고, 나같은 문외한이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는 것도 단지 우습기만 할 뿐이다. 다만 두 블루레이를 연달아 보고 나니, 적어도 "표현력" 측면에서는 빈 필이 한참 더 높은 곳에 있다는 평소 생각이 확신으로 바뀔 수 있었다. 서울에 살게 ..

카테고리 없음 2023.08.15

The Diamond Sutra

1. 언젠가 처음으로 스마트 TV를 샀을 때, 유투브 재생이 가능하다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 왜 그리 불필요한 기능이 있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퇴근 후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유투브 영상 1,2개 정도는 보는 걸 생각하면, 기술의 발전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지 사람이 변해서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게 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다만 TV에 그런 기능이 없었다면 그 시간에 책이라도 한 줄 더 읽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영상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을 고르라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가 만든 의 추진체가 다시 회수되는 영상과 함께 (https://www.youtube.com/watch?v=OtIMeAt2lTY&t=462s)..

카테고리 없음 2023.06.05

Thomas Bernhard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들 중에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에밀리 브론테의 이다. 이 책을 처음 본 건 초등학교 때였지만 당시는 일종의 축약본이기도 했고, 당시 이 책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책을 다시 읽고 난 후, 난 항상 이 책의 주인공 heathcliff와 같이 살기를 소망했다. 사람을 싫어하고, 세상을 경멸하고, 모든 것을 증오하는 그런 삶. 늘, 좋은 사람보다는, 좋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도 타고난 천성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기에, heathcliff와 똑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사람과 지내는 걸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에 가까웠던 내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

카테고리 없음 2023.03.01

Circe

1. 1박 2일간 외부 일정이 있었다. 몇 개월 전부터 거의 모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 온 내게,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1박 2일은 평소보다 더 낯설었다. 막상 가서 보니 정리된 안건도, 진행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굳이 외부까지 갈 필요도 없는 일정이었다. 몸이 아프다는 거짓말로, 식사 자리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것이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이란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옛 사람들은 소설을 맛 볼 때 먼저 문장을 맛 보았다... 그러나 현대에는 문장을 맛본다기보다는 소설을 맛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작가의 문장이 좋다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고, 작가의 소설이 재미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문장은 소설의 유일한 실체이며, 말은 소설의 유일한 재료이다..." 생각해보..

카테고리 없음 2022.09.24

Hellbound

1.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영화 에 관련된 찬사와, 많은 수상내역들에 대한 것이다. 대체 이 영화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훌륭하다는 것일까? 가정부가 숨겨준 사람이 남편이 아닌 - 원래 각본대로 - 아버지인 변희봉이었다면 내 평가가 조금은 더 나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의 현재 모습이 어디가 그렇게 대단하고 심오하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어려우며, 이 영화가 , 와 같은 위대한 작품들이 받았던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 따름이다. 최근 나온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꼽으라면 나홍진 감독의 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뭔가 피해를 입을 때, 항상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그러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아..

카테고리 없음 2022.01.01

Bygone days

1. "무인도에 간다면 어떤 책이나 음반을 가지고 갈지"를 물어보는 것보다 더욱 더 무의미한 질문이 있다면 장례식장에서 어떤 음악이 연주되었으면 하는지 물어보는 게 아닐까 싶다. 본인은 이미 죽고 사라진 다음인데 그런 것들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본인의 장례식에서 연주될 음악을 세세하게 골랐지만 정작 남편 구스타프 말러의 곡은 그 중에 없어서 비난을 받았던 알마 말러에게 굳이 비난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만일 내게 누군가가 장례식장에서 연주될만한 음악을 하나 선택해 달라고 한다면, 아마도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을 말해 주지 않을까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아름답고 빛나는 작품에서는 슬픔과 탄식,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의 정화 뿐만 아니라, 형언할 수..

카테고리 없음 2020.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