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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ve Star Stories

Heathcliff 2012. 3. 25. 20:47

 

1. 소년탐정 김전일

 

    

 

 

아서 코난 도일, 존 딕슨 카, 엘러리 퀸등으로 대표할 수 있는 고전추리소설은

모두 기묘한 트릭에 바탕을 둔 작품이 대다수였고,

소설의 주된 내용 역시 '어떻게 (how)' 이런 살인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치밀한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흐름이 '왜 (why)' 이런 살인이 이루어졌는지 범인의 굴곡된 심리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경향으로 바뀐 것은

여러 일본 작가들의 뛰어난 역량과 깊이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미 1900년대 초반에 에도가와 란포가

에드가 앨런 포에 전혀 뒤지지 않는 기괴하고 뒤틀린 상상력으로 가득찬 작품들을 쓴 이래,

일본 추리소설은 다양성을 겸비한 대단한 깊이를 가진 작품들이 상당수 출판되었는데,

이 <소년탐정 김전일>은 그 중 만화의 형식을 빌린 추리문학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힐만하다.  

 

김전일이 가는 곳마다 100% 연쇄살인이 일어나거나

김전일과 함께 여행을 떠난 사람은 무려 66.6%의 확률로 살인을 당한다는 류의

황당무계한 설정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그토록 많은 인기를 끌었고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트릭을 푸는 'how'가 주는 쾌감외에도,

범인이 왜 그런 살인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why'에 대한 부분을 집요하리만치 파고들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김전일 시리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이 <이진칸촌 살인사건>은

이 'how'와 'why'가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탁월함으로 절묘하게 맞물린 작품으로,

마지막 순간 범인이 가진 차갑고 절망적인 분노와 절망, 광기에 

독자가 결국 공감할 수 밖에 없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좀처럼 쉽게 떨쳐내기 어려울만큼 강렬하고도 어두운 것이다.

 

하지만 김전일 시리즈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 중 역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바로 수많은 표절이 아닐까 싶다.

김전일 시리즈를 시작하는 1편 <오페라 극장의 살인>에서

그 유명한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에서 나오는 트릭을

- 어떤 생각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 천연덕스럽게 대놓고 베낀 이 작가는,

2편인 이 <이진칸촌 살인사건>에서도 여전히 다른 추리소설의 트릭을 멋대로 베껴오고 있다.

 

 

 

예를 들어서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인 6개의 미이라를 7개로 만드는 위의 기괴한 트릭은

1981년 출간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에서 나온 트릭을 그대로 표절한 것이다.

평범한 작가도 아닌 <신본격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이끈 천재작가의 작품을 표절한 사실에 대해

처음에 언급하지 않던 작가는,

시마다 소지에 의한 민사소송이 진행되며 비난이 들끊자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애장판에는 '사용'사실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 뻔뻔한 작가는 이 작품 중 침대가 들어올려지는 트릭 역시

로널드 녹스의 고전 <밀실의 수행자>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는 사실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 작가는 이런 크고도 작은 표절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김전일의 할아버지인 긴타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대표작 <이누가미 일족>에서 대부분의 모티브와 줄거리를 빌린

<쿠치나시촌 살인사건> 같은 경우는 패러디인지 오마쥬인지 대담하기 짝이 없는 표절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대단히 훌륭한 트릭을 선보이는

<밀랍인형성 살인사건>이나 <마술열차살인사건>, <타로산장살인사건>같은 경우도

그 탁월함에 놀라면서도 혹시 내가 미처 읽지 못 한 어떤 추리소설에서 트릭을 베낀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 힘들곤 하다.

 

또 한가지 문제점은, 사건의 개연성와 관련된 부분이다.

예를 들어서 이 <이진칸촌 살인사건>의 범인은 자신의 연인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런 복잡한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냥 어느 밤 늦은 시간에 원한이 있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살인을 저지르는 편이 훨씬 간단하고

무엇보다도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심조차 받지 않았을 것이다.

 

 

2. The Five Star Stories

 

     

 

마모루 나가노가 창조한 이 위대한 세계,

경이롭고도 압도적인 이 작품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애정은 무한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항상 참다운 예술작품이 주는 깊이있는 감동은

감상하는 사람의 생활태도나 가치관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내겐 <The Five Start Stories>가 그런 작품 중의 하나로서

벌써 거의 20년도 다 되가는 오랜 예전에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이래로

이 작품은 내게 정말로 많은 영향을 미쳤고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이 작품에서는 56억 7천만년등의 방황등 (불교에서 미륵불이 다시 출현하는 시간)

유독 불교적인 색채를 보이는 세계관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겐 이 작품이 불교에서 나오는 <깨달음>과 유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행을 해도 <깨달음>을 얻기 어려운 것처럼,

이 난해하고 복잡한 작품 역시 한 두번 봐서는 절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지만,

10번 혹은 20번 이상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용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 갑자기 찾아 오며,

그 뒤로는 이 작품이 가진 방대하기 그지없는 세계관과 깊이 있는 스토리에서 나오는

진정한 힘에 자유롭게 빠져들 수 있다.

 

내 e-mail ID와 핸드폰번호에 들어가는 '6800'이란 숫자는

이 작품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연도에서 따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겨우 나 정도의 인간이 이런 숫자를 쓸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내가 이 작품에 대해서 갖고 있는 애정은 이 정도로 큰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작품은 출간되는 속도가 정말 너무나 느리다는 것이다.

1987년 1월에 1권이 출판된 이래, 25년 동안 겨우 12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은 연표에 이미 다 나와있으므로 굳이 책은 안 나와도 된다고 망언을 한 때 했던 마모루 나가노지만,

요즘에는 한 발 뒤로 물러나서 Five star Stories는 36권으로 완결될 것이며

자기가 끝을 못 내면 자신의 아들이 대를 이어서 끝낼 것이라는 인터뷰를 몇 년 전에 했었다.

그 후 아들이 정말 있느냐라는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시끄러웠지만,

얼마전 인터뷰에서 아들이 턱선을 너무 둥글게 그려서 문제라는 말을 한 걸로 봐서는 아들이 있긴 있는 것 같다.

 

 

3. 베르세르크

  

 

<The Five Star Stories>와 함께 내가 죽기 전에 완결을 볼 수 있을지 항상 조바심과 의문이 나는 작품.

 

10년 전쯤 <베르세르크>의 작가 켄타우로 미우라의 인터뷰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당시 그는 '그리피스가 현실세계에 환생해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나라를 세운 후 세계가 판타지화되는 것"

까지가 발단부라고 했다.

그렇다면, 연재 25년이 훌쩍 넘어서 36권이 나온 지금 겨우 이제 막 '발단부'를 지난 셈이다.

 

작품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이 더 많고 가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연재를 쉬곤 하는 마모루 나가노와는 달리

켄타우로 미우로는 작화가 너무나 섬세하기에 어시스던트 들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아서

결국 하루 종일 홀로 작업만 하기 때문에

1년에 1권을 하나 낼까 말까 해도 아무도 비난을 하지 못 하며

도리어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대다수인 점이 재밌으며,

그래서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살아있을 때 완결을 볼 수 있을지 전전긍긍해 하고 있는 것 같다.

 

 

 

온통 헤어날 곳 없는 어두움으로 가득 찬 작품임에도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비결은

역시 도망칠 수 없는 공포와 절망, 한 가닥의 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강렬한 증오과 광기에 의지한 채

처절함 속에서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는 가츠의 삶 그 자체에서 나오는 강력한 힘 때문일 것이다.

 

고통과 상실, 복수와 증오로 얼룩진 그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그는 과연 복수에 성공할 것인지.

모두 그리피스의 편에 돌아선 세상 사람들은 과연 가츠와 어떤 관계가 될 것인지.

 

이제 겨우 발단부에 불과한 내용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홀린 이 위대한 작가가

앞으로 어떤 내용을 풀어나가며 그 천재성을 발휘할지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베르세르크의 다음 권을 간절히 기다리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일종의 종교적인 감정에 가까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켄타우로 미우라에게 닿기를 바라는 사람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4. 인어의 숲

 

 

 

 

타카하시 루미코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것이 과연 <란마 1/2>같은 구김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만화를 창조해 낸 사람이 그린 작품이 맞을까.

작고 동글동글한 몸집, 음침한 생각이라고는 한 번도 안 해 봤을 것 같은 목소리와 말투를 가진 생기 넘치는

그녀 안의 어디에  이런 고통스러울 만큼의 차가운 증오심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인어의 숲>을 처음 봤던 날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지금가지 겪은 것 중 가장 충격적인 일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아마도 평생 잊지 못 할 것이다.

보고 난 직후부터 한 동안 어지러우면서 몇 번의 구토에 시달렸고,  

그 날 저녁은 전혀 잘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하루 종일 이 작품만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아주 오랫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했고 다른 사람들과 말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겨우 조금씩 이전대로 회복이 되기 시작한 건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나서나고부터였다.

 

내가 이제까지 살면서 접했던 모든 것들, 그것이 실제 인간관계든, 영화든, 책이든, 음악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타카하시 루미코의 <인어의 숲>만큼 인간영혼 내부의 뒤틀린 어두움과 증오를 생생하게 표현해 낸 작품은 없었다.

처음에는 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어둡고 또 어두운 광기의 분출에 압도당해서 토할 것 같았지만,

곧이어서 그런 몸서리쳐질 정도의 어두움은

타카하시 루미코 뿐만 아니라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는 혹독한 진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그토록 힘들었고,, 그토록 오래 걸렸었다.

 

난 한 번 보고 나서 어떤 식으로든 감명을 받은 작품은 여러 번 다시 보곤 하기 때문에,

수십 번을 다시 본 책이나 영화, 만화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 <인어의 숲>은 힘들게 중고만화방을 뒤져서 구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다.

그토록 강렬한 충격을 받았음에도 말이다.

 

                                                                                                                             2012.3.25